아버지의 잔소리와 폭언을 일방적으로 당해야 한다면 견디기 힘든 일일 것이다. 본인이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상담을 의뢰했을까 생각하면 자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바람직한 부모-자녀관계의 모습을 위해 애쓰는 자녀들의 모습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갈등이 오래 지속되어선지 가족 성원들은 편협된 그리고 왜곡된 시각으로만 상대방을 바라본다. 아버지는 원래 권위주의적인 사람인데 경제적 사정의 악화로 그런 성향이 더 심해지고, 그로 인해 가족들에게 미안한 생각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난폭하게 대한다고 계속 생각하다 보면 아버지를 다르게 바라보는 것이 쉽지 않다.

이 때 우리 아버지는 가족을 생각하지 못하는 고집스런 사람이 아니라 아버지도 지금 얼마나 고통스러울까를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아버지도 실직으로 인해 직장을 잃고 예전같은 생활을 하지 못하니 얼마나 힘이 들까, 그리고 자녀와 부인에게도 떳떳한 가장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속이 상하고 가슴 아파할까를 생각해보자.

이 때 많은 자녀들은 `힘든 상황일수록 가족들에게 난폭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자상하게 대해주어야 하지 않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한국의 아버지들은 전통적인 사고 방식으로 인해 자신의 열등감을 애정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20대가 된 자녀들이 먼저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이 어떤가? 아버지에 대한 생각의 변화는 아버지를 대하는 행동을 변화시키고, 그러면 아버지 역시 자녀의 따뜻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가족 성원들의 갈등이 지속될 때 한쪽에서 먼저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상대방을 바라보고 이해해보자. 상대방 역시 자신이 가졌던 왜곡의 시각을 버리고 다가설 것이다. 오늘 저녁, 어깨가 축 늘어진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고 함께 산책하자고 제안해보면 어떨까? (02)597-5135.

전춘애/ 한국가족상담교육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