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간 사생활 감시 실태를 보도한 '배우자 뒷조사 위험 수위'(본지 4월 23일자 10면) 기사가 나간 뒤 인터넷에선 뜨거운 공방이 벌어졌다. "배우자가 몰래 감시를 한다면 나를 못 믿는다는 사실에 배신감이 들 것"(alsehgml)이라며 공감하는 네티즌이 많았다. 반면 "배우자가 곧 나인데 웬 사생활이냐"(robotark)는 반박도 적지 않았다. "배우자를 뒷조사하는 방법을 가르쳐 줬다"(me222)는 지적도 나왔다.
취재에 앞서 기자도 비슷한 걱정을 했다. '배우자 뒷조사의 실상을 보여주면 오히려 부작용을 낳지 않을까' '부부간의 은밀한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가정문제상담소 등 부부의 불화와 갈등을 다루는 전문가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는 단순히 '외도'나 '의처증.의부증'의 문제가 아니었다. 조그만 의심이 발전해 부부간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마음의 병(病)'이었다. 많은 부부가 상대에게 상처와 모욕감을 안기고 있었다. 파경에 이른 경우도 적지 않았다.
IT 기술이 발전하면서 마음의 병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과거 배우자 뒷조사는 일부 부부만의 얘기였다. 하지만 이제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쉽게 상대의 행적을 추적할 수 있게 됐다. 평범한 부부들까지 감시의 유혹을 느끼고 있는 게 사실이었다.
이런 병은 감춰서는 고쳐지지 않는다. 한 상담소에서 접한 사례는 이를 말해 줬다. 40대 전업주부는 10년이 넘게 남편의 사생활을 감시해 왔다. 집착은 그를 불안.초조하게 만들었다. 남편도 지쳐 갔다. 그런 부부가 마음의 응어리를 푼 것은 대화의 힘이었다. 부인은 "남편을 너무 괴롭혔구나, 남편은 "아내가 상처를 받았구나"라는 사실을 서로 새롭게 알게 됐다고 한다.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 김숙기 원장은 "사생활 감시는 악순환이다. 추궁받는 게 싫어 사소한 거짓말을 하고, 그 때문에 의심은 커진다"고 말했다. 서로 최소한의 사적 공간을 인정해 주고, 상대에 대해 믿음이 있다면 불신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다. 그러나 이를 강요함으로써 나타나는 부작용은 생각보다 크다. 이에 대해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울 필요가 있었다. 부부간 사생활 감시에 대해 보도하게 된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