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잘못덮기`의 방지

우리가 과일가게에 가서 과일을 고를 때 매우 신중하게 고른다. 썩거나 흠집은
없는지 ,과일이 잘 익은는지, 그리고 빛깔은 싱싱한 느낌을 주는지를 잘살핀
후 원하는 수량만큼 골라서 과일봉지에 담는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1516년

토마스 모어가 쓴 <유토피아>에도 나온다.

조그만 망아지 한 마리를 사는데도 몇푼의 차이를 두고 조금이라도 깍으려고
실랑이를 벌이고, 또 망아지가 벌거벗고 있는데도 안장과 기타 마구를 모조리
벗겨내고 혹시 그아래 상처라도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보고 살 만큼 세심하다
는 것이다.
그런데 싫건 좋건 여생을 같이 하게될 아내를 택하는데  있어서는 어이없이 소
홀하여, 전신을 옷으로 덮어 겨우 나와 있는 얼굴 하나만 보고 모두를 평가하
여, 뒤에 기분나쁜 것을 알게될 위험성을 전혀 고려치 않고 결혼 한다는 것이
다.

"여자는 처녀든지 과부든지 간에 존경 할 만한 기혼 부인의 입회하에 장래의 배
우자 앞에 나체로 선을 보여야 하고, 또한 남자도 인품이 방정한 사람에 의해
여자에게 나체로 선을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만약에 결혼 후에 어떤 결함이 발
생된다면 그것은 서로 운명으로 받아 들여야 겠지만, 그러지 않다면  사전에
법으로써 그러한 위장에 빠져드는 것을 막아 줌이 옳다는 것입니다"¹

잘못된 만남을 사전에 피해 보자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결혼에서 중요한 과
제일 수밖에 없다.

토마스 모어가 활동할 당시 시험결혼의 풍습은 널리 유럽에 퍼져 있는 결혼 형
태였다. 그 기원은 정확하지 않으나 고대 그리스에서 발생된 것이라고 전해지
고 있다. 시험혼은 결국 보지 않고 결혼하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스칸디나비아 지역, 북아메리카의 인디안이나 필리핀 등의 원주민들 사이에서
도 성행하고 있었으며, 즉 서로가 잘 생각한 다음에 정식결혼을 한다고 하는
풍습이었다.

19세기 영국이 요크세 지방에서는, 「그대 만약 몸이 불완전 하면 나 그대를 반
려자로 맞이하지 않을지니......」라는 서약도 있을 정도였으며, 만약 시험혼에
서 딸이 임신하지 못한다면 약혼이나 결혼도 파산이 되며, 또한 남성에게 성적
인 능력이 없다면 여자 쪽에서 일방적으로 파혼을 제의 할 수도 있었다.²

오늘날에 와서는 이러한 결혼의 제반 관계를 문서화 함으로써 자신들의 결혼문
제에서 발생 할 수 있는 여러 상황을 사전에 계약의 형태로 묶어서 대비 하고 있
다.

커플들은 '결혼 계약을 할 때 함께 살기의 일상적 측면들을 가능한 많이 규
정"하라고 권고받는다.

물론 이때 주된 목적은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함께 하거나 혹은 친밀함을 증진시켜

줄 수 있는 방식들로 삶을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규제를 통해 자신의 이해 관계를

보호하는데 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계약의 문서 내용은 '우리'에 맞서 '나'를 보호하라는 것이
다. 점점 더 많은 커플들이 이러한 조언을 체택하고 있으며  이러한 협정을 시
작하는 사람들의 수가 급상승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³


"그 남자의 약혼녀는 날씬했다. 그는 그녀가 그래서 좋았다. 그는 그녀가 그 모
습을 유지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는 그녀가 날씬함으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힘닿는 일이면 뭐든지 하리라 결심했다...... 결혼하기 전에 신랑은 신부에게
몸무게가 늘어나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 계약서에 동의 하도록 했다. 몸무게
가 다시 줄어들면 벌금을 반환한다는 조건을 달고서......."

이것은 그저 재미 삼아 한 약속이 아닌 어떤 커플이 뉴욕의 한 변호사의 입회
하에 협정된 혼전 계약서 내용이다.

결혼 계약서에는, 결혼 이후의 사적 공간의 분할에서부터 이혼하면 전세 아파
트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것을 법적 문서에 상세히 적어
두고 있었다.

또 배우자들이 휴가 장소를 교대로 선택하고 아이를 교육하는데 평등하게 참
가할 것, 서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예전 성적 경험들의 진상을 완전히 밝힐 것
등등이  혼전 계약서의 내용들이다.

변호사들에 따르면 엄밀한 제정적인 문제에서부터 흔치 않은 라이프 스타일
항목까지 온갖 종류의 혼전협정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인터내셔널 해
럴드 트리뷴/ 1986, 9, 24)고 한다.

그렇다면 만일 그렇게 했는데도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돌발상황이 나타 나
거나 차이점들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에도 계약서를 만들어야 한다
는 것이다.

공통점이 더 이상 없다면 자조(自助)라는 새로운 철학은 그러한 상황에 대처하
기 위한 세련된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do ut des'라는 오랜 원칙으
로 '내가 당신에게서 싫어하는 것과 당신이 내게서 싫어하는 것을 교환을 통
해 없애자' 는 것이다.

이처럼 '상호 행동의 선택을 위한 협정'을 제안하는 자조 지침서들이 이미 밀물처럼

쏟아져 나와 있다.

이러한 가이드 북에 들어 있는 지침 중의 하나를 보자면 이렇다.

각 파트너는 그/그녀가 상대방에게 원하는 것을 얻는다. 가령 "아침에 �어진 옷 대신에

멋진 옷을 입기로" 계약한다. 그는 "젊은이들과 술 마시러 가지 않고 제시간에 저녁

먹으러 집에 오기로"동의한다.

심지어는  "섹스를 할 때 좀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혹은 "그는 나에게 키스를 할 때
더 많이 해 주어야 한다"는 것까지 협정 할 것을 권하고 있다.

철학자 사르트르와 보봐르는 '책임에 근거를 둔 결혼이 아니라 자유에 근거를
둔 결혼'의 실천으로 그들의 명성만큼이나 이방면에서는 꽤나 알려진 인물들
이다.

이제 비록 그들처럼 철학자는 아니지만 그들의 후예를 자처하는 많은 커
플들이 탄생하고 있다.

일체의 외적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원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는 것, 그
것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종류의 상호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든 것이 개방되어 있으면 모든 것을 협상해야 하고, 공통의 명분이 없다면 각 개
인의 사적 관심사는 상대방의 침해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그래서 과거에는 '평생의 결합이던 것이 특정한 조건하에서만 유지되는 헌신
으로 변화'된 현대결혼의 모습을 보게된다.

아직은 서구사회의 이야기지만 최근 이혼률이 급증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도
곧 우리의 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¹ 토마스 모어/유토피아
² 세계성풍속산책/신세대
³ 울리히 벡/사랑은지독한 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