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참작이라고? 정당방위다◎

20000512 한겨레

지난 4월23일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숨지게 한 신아무개 여인 사건이 일어났다. 1년에도 몇 차례씩 접하는지라 이젠 충격을 받기보다는 화부터 난다. 왜 또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그 동안 이런 종류의 사건들을 지켜보며 ‘가정폭력에서 약자를 보호하는 법이 없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자신의 생명을 지키려고 이런 극단적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고 강력히 주장해왔다. 그 결과 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됐고, 또 시행된 지 2년째 접어든다. 그런데도 남편 살해, 아들의 아버지 살해 같은 사건들이 여전히 잇따른다.

경찰서에 갇힌 신 여인을 변호사와 함께 접견했다.

그는 12년 결혼생활에서 남편의 무능력 때문에 생계를 책임지면서도 끊임없이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다고 했다. 남편은 수시로 칼을 들이대며 위협했기에 무슨 일만 있으면 습관적으로 칼을 치웠단다.

그날도 별거중인 남편이 집에 찾아오자 그는 칼부터 숨겼다. 남편은 이혼 요구를 철회하라고 요구했고, 이를 거부하자 칼 대신 가위로 위협했다. 옷을 벗기고 가위로 다리를 긋고 성관계를 요구했다. 이를 뿌리치다 순간적으로 침대 밑에 둔 칼로 그를 찔렀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사건들에서 우리는 한결같이 여성들의 정당방위를 주장했지만 정당방위가 인정된 적은 없었다. 다만 상습적으로 구타 당했다는 정상이 참작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폭력 당한 뒤 남편이 잠든 사이, 또는 폭행 당하다 잠깐 쉬는 틈에 가해했던 그 동안의 사건들과는 다르다. 곧 가위로 목에 상처를 입는 매우 위험하고 급박한 상황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정당방위 요건을 충족한다고 확신한다.

가위까지 들이대는 강도 높은 폭력을 당하는데도 살상적 공격행위가 없을 거라는 기대 아래 그대로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해석한다면, 피해자가 겪은 위험성과 급박성을 너무 과소평가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장기간 지속적인 폭력을 가한 아내를 흉기로 위협하는 행위는 낯선 이가 한 차례 위협하는 것보다 더욱 위험하다고 봐야 한다.

우리는 신 여인의 정당방위와 무죄를 인정 받기 위해 뛸 것이다.

(02)2272-2161~4. 이문자/서울여성의전화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