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콤달콤’한 신혼시절이 지나가면 ‘시큰둥한’ 권태기가 찾아오게 마련이다. 누구나 한번쯤 홍역처럼 겪게 되는 결혼생활의 권태기. 박은숙·최정자 주부가 자신들이 겪은 권태기와 이로 인한 부부 갈등, 해결방법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최정자(이하 최): 저는 지난해 결혼기념일에 처음으로 남편과 단둘이 여행을 다녀왔어요. 보따리 하나 없이 입고 있던 옷차림 그대로…. 퇴근한 남편이 “장모님도 와 계시는데 둘이서 어디든 갔다 오자”고 해서 갑자기 떠나게 됐죠. 신혼여행 이후 17년 만이었어요.
박은숙(이하 박): 기분이 좋았겠네요. 저도 지난 3월 결혼 이후에 처음으로 남편과 단둘이 여행을 떠났어요. 비록 당일치기였지만(웃음). 가족들과 함께 다니다가 둘이서만 여행을 떠나니까 색다른 느낌이 들더라고요. 팔짱도 끼고 바닷가를 거닐면서 평소와는 다르게 무드도 잡았고요. 하루 종일 놀다가 새벽에야 돌아왔는데 기분이 아주 상쾌했어요.
최: 2박3일 동안 내내 자유롭더라고요.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정말 편했어요. 밤낚시하는 남편 옆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좋더라고요.
박: 연애할 때 기분이었겠네요.
최: 그럼요. 안면도 바닷가에서 들은 파도소리는 동해안처럼 거칠지 않고 조용조용해서 분위기가 그야말로 끝내줬죠.
박: 저도 단둘이 여행을 가니까 새삼스럽게 연애시절을 떠올리게 되고 집에서 늘 하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데도 느낌이 달랐어요.
최: 여행 가서 모텔이란 데를 처음 가봤어요. 가족들과 함께 가면 콘도나 민박을 이용하게 되잖아요. 결혼 이후 시부모님과 쭉 함께 살아서 가끔 ‘모텔에 가서 자고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시부모님과 같이 사는) 친구들은 가끔 간다고 하기에 남편에게 ‘우리도 거기 한번 가볼까?’하고 말을 꺼냈더니 ‘가보자’고 대답은 하는데 워낙 교과서 같은 사람이라 남들이 이상하게 볼까봐 막상 실천에는 옮기지 못하더라고요(웃음).
박: 저희는 결혼 이후 분가를 해서 그런지 모텔에 갈 생각은 안 해봤어요.
최: 장소가 색달라서인지 느낌도 새로워 마치 신혼으로 돌아간 기분이었어요. 3년 전, 삶의 의욕도 사라지고 ‘내가 이런 고생하려고 결혼을 했나’ 싶어서 몹시 우울했어요. 제가 꼭 고여 있는 물과 같았죠. 짜증이 나니까 남편이 꼴도 보기 싫은 거 있죠. 나와 결혼한 죄밖에 없는 남편이 모든 짜증의 원천인 양 몰아붙였죠. 그때 남편과 단둘이 여행을 다녀왔더라면 권태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뒤늦게 들더라고요.
“부부는 가끔씩 떨어져 있어야 서로 소중한 걸 알게 되나 봐요”
박: 무척 힘든 시기였겠네요. 권태기라는 게 마음에 쌓인 게 많아 심리적으로 고통을 받는 거잖아요.
최: 그럴 때 부부가 가끔 떨어져 있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5개월 동안 남편이 지방에서 근무할 때 주말부부로 지냈는데 정말로 좋더라고요. 부부는 가끔씩 떨어져 있어야 서로 소중한 걸 알게 되는 것 같아요.
박: 아유~ 좋았겠네요. 제 남편은 가게를 하고 있어서 24시간 붙어 있는 시간이 많아요. 그래서 출장 가는 남편을 둔 주부가 부럽기도 해요.
최: 남편이 없으니까 너무너무 편하고 좋은 거 있죠. 아침에 안 깨워줘도 되지. 밥 안 차려줘도 되지. 빨래도 신경 안 쓰지. 잔소리 안 듣지…. 한번은 보름 만에 남편을 보니까 가슴이 뛰면서 반갑고 설레는 기분마저 들더라니까요.
박: 남편은 보름 만에 아내 얼굴을 본 느낌이 어떻다고 하던가요.
최: 저와 비슷한 감정이었다고 해요.
박: 저도 그런 날이 있었으면 좋겠는데…(웃음). 지금까지 떨어져 있어 본 적이 없거든요. 가끔은 자유부인이 된 듯한 해방감을 맛보고 싶잖아요. 그런데 남자들은 권태기가 찾아오면 다른 여자를 만난다고들 하잖아요
최: 그럴 것도 같아요. 아내가 권태기에 접어들면 남편도 거의 동시에 그런 감정에 휩싸이지 않겠어요. 짜증내는 아내를 좋아할 남편이 어디 있겠어요. 남편이 집에 들어오거나 말거나 쳐다보지도 않았으니 얼마나 싫었겠어요. 결혼 초기에는 남편이 어딜 가면 ‘언제 오나’ 하고 손꼽아 기다렸는데….
박: 하긴… 부부란 좀 떨어져 있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요. 그래야 남편에게 잘해준 게 뭔가, 또 잘못해준 것은 뭔가 곱씹어 볼 기회도 되고요.
최: 권태기에 접어들면 모든 게 싫잖아요. 대화도 단절되고 부부관계도 원활하지 않고….
박: 성생활은 부부에게 있어 참 중요하죠.
최: 그렇죠. 부부싸움을 하고 나서도 같이 자고 나면 풀어지잖아요. 그럴 때마다 ‘섹스가 부부에게는 또 다른 대화의 수단이구나’하고 느껴요. 말로는 화해가 쉽게 이뤄지지 않지만 (성관계를) 하고 나서 ‘우리 다음부터는 서로 잘하고 살자’는 한마디에 상한 감정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걸 보면 ‘아, 이래서 부부구나’ 하고 생각될 때가 많아요.
박: 그래서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하잖아요. 하룻밤 자고 나면 격한 감정도 없었던 일로 되고 마니까요(웃음).
최: 하긴 싸우고 나서 화해의 도구로 (성관계가) 참 좋은 것 같아요. 또 우리 부부는 성생활의 불만족스런 부분이 있으면 숨기지 않고 얘기하는 편이에요. 권태기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부부관계는 정말 중요하다고 봐요. 남편이 성관계를 가질 때 제가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해줄 때 ‘남편이 나를 정말로 사랑하는구나’ 하고 느끼게 되잖아요.
박: 우린 싸우고 나면 전 따로 자고 싶어서 베개를 들고 다른 방으로 가는데 남편은 싸운 이후에 절대 각방을 쓰면 안된다고 해요. 저는 혼자서 마음을 삭이고 싶은데 남편은 오히려 저를 건드리는 편이죠.
최: 표현은 그렇게 하지만 남편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섭섭하지 않나요? 저도 싸우고 나서 남편이 건드리면 ‘어딜 건드려. 건들지 마’ 하고 톡 쏘아붙이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섭섭하던데…(웃음).
박: 그렇긴 해요. 남자들은 섹스를 통해서 속상해하는 아내를 감싸안으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서로 얽힌 감정이 풀어지면 다행이죠.
최: 결혼생활의 연차가 더해질수록 여성은 밖으로 돌려고 하고 남성은 집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더라고요. 옛날에는 집안을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는 것도 좋았고, 살림하는 것도 재미가 있었는데 요즘엔 바깥에서의 생활이 더 즐겁더라고요. 친구나 친척 형님들과 만나서 카페도 가고 노래방도 가고. 그렇게 나갔다 오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좋아요.
박: 힘들 땐 어디든 탁구공처럼 튀고 싶죠. 그전에는 외출할 때 남편에게 ‘허락받고’ 갔는데 재작년부턴 ‘통보’하고 외출하기 시작했어요. 똑같은 외출도 허락받고 가는 것과 내뜻대로 나가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잖아요.
최: 맞아요. 저도 그것 때문에 많이 다퉜어요. 남편은 낚시 갈 때 ‘갔다온다’는 말 한마디 달랑 하고 떠나는데 난 남편에게 허락받아야 되니까 짜증이 나더라고요. 일년에 한번 정도 남편의 허락(?)하에 친척 형님들과 나이트클럽에 가서 놀다 와요. 웨이터가 깔끔한 30, 40대 남자손님이 부킹을 요청해 왔다고 하면 부킹에 응하지 않으면서도 괜히 기분이 좋은 거 있죠.
박: 저도 그 기분 느껴봤어요. 가끔 친정언니들과 함께 나이트클럽에 가서 분위기에 젖어 있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거든요. 부킹이 들어오면 그 자체가 즐겁더라고요(웃음). 근데 나이트클럽에 가면 부킹을 통해 낯선 남자와 한순간 즐기려는 주부들도 많더라고요.
최: 남편이 얼마전 지방에서 근무할 때 직원들과 함께 모텔에 장기투숙을 했는데 청소하는 아줌마가 그러더래요. ‘동네에 노는 아줌마들 많으니까 생각이 있으면 말하라’면서 ‘돈 안 줘도 된다’고 했대요. 남편은 ‘세상이 그렇게 썩었다’면서 한탄을 하대요. 남편에게 은근슬쩍 그러고 싶은 마음이 정말 없었냐고 물으니까 ‘나도 남잔데 야들야들한 여자를 보면 왜 그런 맘이 안 들겠냐고, 그러고 싶지만 당신이 나를 믿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대답하대요. 그러면서도 ‘술기운이라면 또 모를까’라는 단서를 붙여 기분이 상하기는 했지만…. 하지만 남편을 믿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으리라 믿어요.
박: 하루는 남편이 ‘새로운 여자와 섹스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고 털어놓더라고요.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남성의 본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죠. 남편은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다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욕구다’ 하면서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최: 그래도 그런 욕구가 있음을 솔직하게 표현해서 다행이네요. 제 남편도 그런 욕구가 있지만 억제할 뿐이라고 하더라고요.
박: 그때 남편이 권태기를 겪고 있지 않았나 싶어요. 가게를 저에게 맡기고 훌쩍 밖에 나갔다 들어오기도 하고…. 그런데 어딜 갔다 왔는지는 지금도 몰라요.
최: 남편은 표현하지 않고 속으로만 끙끙 앓는 스타일이라 언제가 권태기였는지 눈치를 못 챘어요. 저처럼 권태기를 겪었겠죠. 없었다면 더 좋겠지만(웃음).
박: 권태기에 바람피우는 남자들이 많잖아요.
최: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많아요. 여자들도 권태기에 ‘새로운 사랑과 가슴 떨리는 감정이 찾아왔으면’ 하고 바라는 욕구는 있지만 참고 살 뿐이죠. 평생 한 남자만 알고 사는 게 그렇게 행복한 일은 아닐지라도 그냥 뿌리깊은 나무처럼, 흐르는 물처럼 사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봐요. 권태기를 맞는 사람마다 모두 사랑을 찾아 떠나 봐요. 사회가 어떻게 되겠어요.
박: 그런데 문제는 주변에서 그런 주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많다는 데 있어요.
최: 바람을 피우면 순간 권태로운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혼생활에 도움이 될까요? 육체적인 관계에 얽매여 단순한 쾌락을 좇다보면 허망하고 후회하게 될 텐데….
박: 바람 피우는 주부들은 결과를 생각하기보다 눈앞의 현실을 중요하게 생각하잖아요.
최: 상대 남자와 감정교류가 있고 정신적인 사랑을 나누는 경우라면 모를까…. 하긴 여자도 가슴이 찡한 사랑을 꿈꾸기도 하죠.
박: 주부들은 인터넷 채팅이나 나이트클럽의 부킹을 통해서 남자를 조달(?)하는 경우가 많아요.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남성으로부터 명함을 건네받은 여성이 남성에게 연락을 취하면 십중팔구 일이 벌어지는 거죠.
최: 여자들도 별 죄의식 없이 성관계를 갖고 즐기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요. 옛날 같으면 주부가 외박한다는 게 쉽지 않았지만 요즘엔 외박하고 집에 들어가서 ‘나 찜방(찜질방) 갔다 왔어’라고 말하면 의심하는 남편들이 없나봐요.
박: 24시간 하는 찜질방이 문제네요(웃음). 그나저나 권태기를 겪을 때 남편이 무척 힘들어했겠어요.
최: 남편은 ‘난 변한 게 없고 달라진 게 없는데 내가 뭘 잘못했냐, 잘못한 게 있으면 얘기를 해달라’고 하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남편이) 잘못한 게 없는 거예요. 결혼생활이 권태로운 원인을 나에게서 찾지 않고 남편에게서 찾으려고 한 게 문제였죠. 한 1년 동안 너무 힘들었어요. 우울증까지 겹쳐서 남편과 얘기를 해도 괜히 서러워서 눈물이 났으니까요.
박: 결혼한 지 6, 7년 지났을 땐가? 남편 생일도 기억하지 못한 적이 있어요. 여자들은 유난히 남편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을 챙기고 싶어하잖아요. 각종 기념일을 아무 일 아니란 듯이 지나칠 때, 그때가 권태기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최: 저보다 권태기가 좀 빨리 시작됐네요(웃음). 남편은 제 행동을 보고 무척 당황하더라고요. ‘뭣 때문에 저렇게 힘들어 하나’ 싶었나 봐요. 그런데 문제는 딱히 꼬집어서 무엇 때문에 우울하고 결혼생활이 권태로운지 이유를 댈 수가 없는 거예요. 그냥 10여년을 시집식구들과 남편,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고 산 자신에 대한 회의가 들었던 거죠.
박: 그때 남편이 다그치지 않고 격려해주거나 위로해줘야 하는데 남편 입장에선 그게 잘 안되나 봐요. 저도 가진 것 없이 결혼을 해서 신혼 초부터 정신없이 일하면서 살아왔거든요. 남편이 하는 일을 곁에서 도와주는 입장이었는데, ‘내가 좀더 돈 있는 남자에게 시집을 갔으면 이런 고생은 안하고 살 텐데’ 하는 생각이 드니까 한때는 무척 힘이 들더라고요. 시집과의 갈등이 권태기의 원인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요즘은 권태기에 바람 피우는 주부들도 많다는데…”
최정자 (43) 전원생활을 꿈꾸던 ‘처녀’와 축산학과를 나와 목장 주인이 꿈이었던 ‘총각’이 만나 84년 결혼. 13세, 16세 아들 딸을 낳고 오손도손 살아가는 그는 시골향기를 맡으며 못다이룬 소설가의 꿈을 이루고 싶어하는 주부다. 최: 권태기라는 게 다른 게 아니라 결혼생활에 회의가 드는 것이잖아요.
박: 권태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봤나요?
최: 그럼요. 그런데 부부간에 대화처럼 힘든 게 없는 것 같아요. 얘기를 하면 싸우니까요. 뭔가 서로 얽힌 감정을 풀어보기 위해서 대화를 시도하는데 결국 서로 자기 입장만 내세우면서 싸우게 돼요. 여자들이 남편에게 바라는 게 특별한 거 아니잖아요. ‘내가 결혼해서 고생한 거 알아달라’는 거지 다른 게 있나요.
박: 남편이 ‘그래. 당신 고생했어’ 하든가 ‘당신 힘든 거 다 알아’ 하고 말하면서 따뜻하게 한번 안아주면 될 텐데 도무지 행동으로 표현하질 않아요. 마음속으로는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해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니 여자들이 섭섭할 수밖에요. 불만을 털어놓으면 싸움으로 이어져 전 아예 혼자 삭이고 말아요. 결혼한 지 10년 정도 되니까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대요. 속병이 생길 뿐이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를 해요.
최: 남편이 사업을 하면서 IMF 때 경제적으로 무척 힘들었어요. 그래도 돈 때문에 힘들다는 말 한마디를 꺼내보지 못했어요. 남편이 자존심 상해할까봐요. 남편이 당시에 부도난 수표를 지금도 가지고 다니는 걸 보면 마음이 아리죠. 결혼생활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남편의 자존심을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원칙은 있었어요.
박: 자존심을 세워주면서 산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에요. 사소한 감정 대립에서 부부싸움이 시작되는데 그때마다 옛날에 잘못한 얘기들이 다 나오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면 또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게 되고….
최: 부부싸움을 할 때 어른들과 함께 살아서 그런지 큰소리를 지르면서 싸워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3년 전에 처음으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싸워봤어요. 가슴에 묻어둔 얘기를 꺼내면서요. 그랬더니 속이 시원하대요. 마음에 담아놓은 얘기보따리를 풀어놔서 그랬나…. 이혼 생각은 없었기에 어떻게든 가정의 틀을 유지하면서 권태기를 극복하려고 하니까 무척 힘들대요.
박: 권태기의 가장 큰 원인은 경제적인 이유와 성격차이였던 것 같아요. 남편이 무척 예민하고 급한 성격이거든요. 서로 맘이 안 맞을 때가 많았죠.
최: 전 탈출구가 필요했어요. 해결의 열쇠를 남편에게 찾지 말고 저 스스로 찾아보자고 마음을 바꿔 먹었죠. 가장 먼저 생각해낸 게 ‘내 일을 갖자’는 거였어요. 몇날며칠씩 벼룩시장이나 가로수 같은 생활정보지를 들춰보면서 할 만한 일을 찾아봤죠. 아무리 뒤져봐도 10여년 동안 집에서 살림만 한 제가 할 일이 없더라고요. 그래도 뭔가 자격증을 따면 낫겠다 싶어서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를 했어요.
박: 그 나이에 자격증에 도전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최: 집에만 있으면 해결방법이 없을 것 같았어요. 자격증을 취득한 이후에 우연히 반찬전문점을 할 만한 상가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무작정 그 일에 뛰어들었어요. 보증금 5백만원에 시설비 5백만원이 들었는데, 적자를 면치 못해 폐업한다 하더라도 ‘시설비만 날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일을 시작하는 데 두려움이 없더라고요. 어떻게든 권태기를 극복하기 위해 집을 뛰쳐나와 반찬전문점을 한 게 3년째 접어들었는데 해보니 몸이 좀 힘들고 피곤하긴 하지만 직장인 못지않게 돈도 벌게 되면서 새로운 자신감을 얻게 됐어요. 일이 바쁘니까 남편을 미워할 시간조차 없더라고요. ‘자기 일’을 하는 게 권태기에서 벗어나는 데 최대의 치료제가 됐어요.
박: 전 수다를 통해서 마음에 쌓인 것을 풀었어요. 친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남들도 저와 별반 다를 것 없는 고민을 하고 산다 싶으니까 위안이 되기도 했고요. 쇼핑도 하고, 밖으로 많이 쏘다녔던 것 같아요.
최: ‘권태기라 힘들어 죽겠다’면서 자기계발 없이 단순한 쾌락이나 순간적인 감정에 의해 좌우되다 보면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될 수도 있어요.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냐에 따라 결혼생활의 미래가 달라지죠.
박: 맞아요. 힘들다고 무작정 신세한탄만 할 게 아니죠. 앞날을 내다보고 권태기의 고통을 삶의 또 다른 밑거름으로 삼을 줄 알아야겠어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