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관람’하는 요즘, 정말 결혼은 미친 짓일까?

만인의 의무로 여겨졌던 결혼이 언제부터인가 ‘안할 수도 있는 것’이 되었다가 요즘은 ‘피하고 싶은 것’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취업 포털 사이트 사람인의 2008년 10월 조사에 따르면 20~30대 직장 여성 61%가 ‘결혼을 안할 수도 있다’고 답했다. 조사에 포함되지 않은 연령대까지 고려하면 결혼을 안할 수도 있다는 미혼 여성의 비율은 실제 더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33세의 출판 에디터 박씨는 소위 말하는 ‘결혼 적령기’를 넘긴 나이지만 결혼을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고. “부모님은 일단 남자만 데려오라고 성화신데 정작 저는 결혼 생각이 없어요. 20대 때는 ‘그래도 언젠가는 해야지’ 싶었는데 서른을 넘긴 지금은 마음이 더 편해요. 이대로 혼자 살아도 아쉬울 게 없거든요.” 단순히 ‘아쉬울 게 없다’는 필요성의 차원을 넘어 극도의 부정적인 생각으로 결혼을 기피하는 이들도 많다. 많은 싱글 여성들에게 결혼은 직장 생활의 끝이요 자유의 종말이고, 가사 노동과 시댁의 속박을 의미한다. 여성 전용 포털 사이트의 시댁방, 결혼방에는 부부싸움, 시댁과의 갈등, 돈 문제로 고민하는 기혼 여성들의 글이 넘쳐난다. 그리고 그런 고민들을 접하는 미혼 여성의 입장에선 결혼은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진배없어 보인다. 29세의 대학원생 황OO 씨는 여자들에게 양보와 희생만을 강요하는 우리나라의 가부장적 가족 문화 때문에 결혼이 두렵다고 한다. “결혼을 하면 명절에 시댁 우선으로 차례 지내고 친정에 가는 것도 눈치 봐야 하잖아요. 게다가 만사에 남자 집안 중심으로 며느리 노릇을 강요당하는 건 참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출산에 대한 두려움과 양육에 대한 부담, 가족 부양에 대한 책임감도 결혼 기피 트렌드에 한몫한다. 그래서 남녀를 불문하고 요즘 싱글들은 결혼을 ‘하기’보다는 ‘상상’하는 편을 선택한다. 지지고 볶는 결혼 생활을 실제로 꾸려가기보다는 연예인들의 가상 결혼 생활인 ‘우리 결혼했어요’를 보는 편이 맘 편하다는 것. 그렇다면 결혼은 정말 ‘미친 짓’이고 ‘한물간’ 유행일까?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결혼만은 싫다는 당신의 맘속에는 정말 어떤 걱정이 있을까? 인륜지대사에 대한 고민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지만 크게 세 가지 원인을 바탕에 두고 있다. 높아진 결혼 비용, 싱글 생활에 대한 아쉬움, 크게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경우가 그것이다. 커플들의 실제 사례와 전문가의 진단을 통해 결혼에 대한 싱글들의 고민을 알아보자.

“결혼 비용 때문에 망설여지더라고요.” -권OO(30세)・박OO(31세) 커플
권씨와 박씨는 10년 넘게 사귀어 온 오래된 커플. 권씨가 유학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헤어지지 않고 국제전화로 연애를 지속할 정도로 신뢰가 깊은 커플이다. 하지만 결혼 이야기가 나오면서 이들의 오랜 사랑에도 위기가 닥쳤다. 사회생활이 늦었던 권씨가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을 망설였기 때문. “작은 아파트라도 전세를 얻어야 되는데 그럴 여력이 없었어요. 이왕이면 번듯하게 시작하고 싶어서 2, 3년만 미루자고 했죠.” 무조건 결혼을 미루자는 권씨의 말에 박씨는 많은 실망을 했고 ‘끝내자’는 말까지 했었다. 하지만 권씨가 결혼 비용 문제로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박씨의 마음도 누그러졌다고. “월급통장, 적금통장 다 가져와서 지출 내역을 적어보자고 했어요. 의외로 술값이 많이 나가는 데다 친구 부탁 들어주느라 별로 필요도 없는 보험이 4개나 가입되어 있었어요. 청약통장도 있지만 써먹질 못하고 있었고요. 술값, 밥값 등 불필요한 씀씀이를 줄이고 둘이 같이 벌어서 집 마련하자고 설득했죠.” 박씨의 말이다.
Expert Says 부자가 되려면 결혼을 하라!
실제로 많은 싱글들, 특히 남자들이 결혼 전에 방만한 씀씀이를 과시하며 월급의 대부분을 음주가무에 날리는 경우가 많다. 여자들 역시 명품 세일과 신상 구두에 대한 유혹은 싱글일 때가 더 강하다. 밖에서 만나 밥 먹고 차 마시는 데 쓰는 데이트 비용 또한 무시 못한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사회 구조상 경제적 독립 연령이 늦고 주택 비용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위 사례의 권씨 생각처럼 결혼 전에 여유 자금을 모은다는 건 웬만큼 계획적이지 않고선 어렵다는 사실. 12월에 결혼을 앞둔 권씨와 박씨 커플은 조만간 박씨의 원룸으로 짐을 합칠 예정이다. 좁고 불편한 원룸에서 시작하지만 둘이 벌어 더 큰 꿈을 꾸기로 한 것. 내년에 분양 예정인 아파트 청약에 올인한 상태다. 많은 심리학, 경제학자들 역시 결혼 그 자체가 재테크라고 한다. 대부분의 경우 결혼을 하면 재정 상태나 돈에 대한 인식이 더 현실적으로 변하기 때문. <결혼 전에 꼭 알아야 할 101가지>의 저자 시드니 J. 스미스는 결혼 후의 미래 계획, 특히 재정 문제에 있어서 다른 누구보다 배우자의 협력과 지지를 받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한다. 혼자서 세우는 계획은 강제성이 없어 실현하기가 어렵지만 소비 생활과 저축 등 동일한 목표를 가진 배우자가 있으면 씀씀이를 더욱 잘 조절할 수 있기 때문. 오하이오 주립대의 제이 자르고프스키 박사는 40대에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독신의 경우보다 90% 이상 재산이 많고 증가 속도도 더 빠르다고 밝혔다. 또한 기혼 남성들은 독신에 비해 업무 집중력과 생산성이 높고 봉급 상승 가능성도 높다.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쇼니 박사는 이런 현상을 ‘결혼 프리미엄’이라고 이름 붙였다. 따라서 경제 상황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과소비를 절제시킬 수 있는 배우자의 역할이 중요하며, 결혼이 곧 재산 증식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혼 전, 수천만원의 부채에 시달리다가 지혜로운 아내 덕분에 결혼 1년 만에 빚을 청산하고 적금도 넣고 있다는 모 개그맨의 경우가 그 가까운 예다.

“결혼?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최OO(37세)・구OO(36세) 커플
직장 선후배 사이로 만난 최씨와 구씨 커플. 서로를 만나기 전에는 둘 다 결혼은 안하고 연애만 즐기자는 생각이었다고. 동호회의 친구들과 잘나가는 직장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던 최씨는 결혼의 필요성을 못 느꼈고, 구씨 역시 남자친구 만나며 혼자만의 삶을 즐길 수 있는 싱글 생활을 더 즐기고 싶었다. 게다가 독감 예방주사 맞는 것조차 싫어하는 구씨 에게 임신과 출산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이들 커플에게 결혼은 남의 일로 여겨지고 있었지만 연애 기간이 길어지면서 헤어지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에 결혼을 해, 이제 3년 차로 접어들었다.지금 20개월 된 딸을 둔 이들 커플의 결혼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결혼은 둘의 생활과 사고방식을 변화시켰지만 가장 큰 변화로 꼽는 것은 ‘건강’이다. “일단 우리 둘 다 건강해졌어요. 결혼하고 나니 아내의 담배 끊으라는 잔소리가 얼마나 심했는지 몰라요. 미루고 미루다가 잔소리에 못 이겨 아이가 생기자마자 금연 클리닉에 등록했어요. 부부는 공동운명체잖아요. 저 사람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고 생각되니까 몸 좀 챙기라는 잔소리도 듣게 되나봐요.” 최씨의 말이다. 처음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구씨는 무척 당황하고 겁도 났지만 아이가 커가는 지금은 그때 일을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임신하고 아기 낳는 거, 정말 힘들긴 해요. 하지만 그걸 계기로 미혼 때는 한 번도 안 갔던 산부인과 검사에도 신경 쓰게 되고 남편과 함께 정기 건강검진도 받게 되네요. 가족, 특히 돌봐야 할 아이가 있으니까 더 건강해져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Expert Says 결혼하면 의무적으로라도 건강해진다
결혼은 나와 또 다른 사람이 한 팀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팀원의 건강은 우승의 기본 조건. 때문에 결혼을 하면 의식적으로 건강에 신경 쓰게 된다. 미혼 시절 과음을 일삼던 남자들도 결혼하면 불필요한 술자리를 줄이게 되고, 골초로 소문났던 싱글 여성이라도 결혼 후 2세를 계획하는 시점에서는 자연스럽게 금연을 하게 된다. 미국 유기농협회의 조사 결과 유기농, 웰빙 식품을 이용하는 이들의 70% 이상이 기혼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건강 보조제와 헬스클럽의 주 고객 역시 기혼자들이다. 미국 최고의 내과의이며 <오프라 윈프리 쇼>의 단골 패널인 마이클 로이젠 박사는 기혼 남성은 독신의 경우보다 10년 이상 오래 살고 신체 나이도 최소 3년 이상 젊다고 밝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아내의 잔소리’ 때문. 금연해라, 자기 전에 양치질해라, 술 줄여라, 적게 먹고 일찍 자라, 비타민을 먹고 운동해라 등 건강에 대한 아내의 긍정적인 잔소리는 건강을 해치는 미혼 시절의 나쁜 습관을 교정해준다는 사실. 한 사람과의 안정된 성생활 역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시켜 준다. 컬럼비아 대학교의 2007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싱글보다 기혼자들이 더욱 활발하고 만족스러운 성생활을 즐긴다고 한다. 로이젠 박사는 배우자와의 지속적인 성생활로 인한 스트레스 해소 효과는 매일 종합비타민을 복용하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낸다고 말한다. 물론 임신과 출산은 여성에게 큰 사건이다. 신체적・정신적으로 무척 힘든 일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건강하게 해주는 이점이 더 많다. 최근 증가하고 있는 유방암 역시 미혼자의 발병률이 현저히 높다고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의대의 페기 보이드 박사에 따르면 호르몬 이상이 큰 원인으로 작용하는 여성암, 특히 유방암은 성적 욕구를 해소하지 못할 때 발병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자궁암과 난소암 등 다른 여성암의 발생률 역시 기혼자가 더 낮으며, 결혼과 출산 후 미혼 시절의 고질적인 여성 질환(생리통, 생리불순 등)이 많이 완화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싱글의 자유를 포기하기 싫었어요.” -강OO(30세)・김OO(30세) 커플
동갑내기 커플인 이들은 만난 지 석 달 만에 강씨가 야구장에서 프러포즈를 할 정도로 급격하게 빠져든 연인이었지만 결혼은 또 다른 문제였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순종적인 전업주부 어머니의 불평등한 결혼 생활을 보고 자란 김씨는 독신을 심각하게 고려할 정도로 결혼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휴가 때마다 새로운 곳을 여행하고, 직장 생활에서 커리어를 쌓아가며 밤늦게 친구도 만나는 자유롭고 편안한 싱글 생활을 포기하기 싫었다. 강씨를 사랑하지만 결혼 후에 자신의 아버지처럼 가부장적인 남편이 될 것 같은 우려도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결혼은 여러모로 여자에게 손해라는 생각 또한 떨칠 수 없었다. 매일 김씨 집 앞에서 기다리며 예비 장인・장모께 읍소했던 강씨의 끈질긴 설득과 다짐 끝에 결혼한 지금, 김씨의 생활은 어떨까? 혼자 하는 여행도, 밤늦게 친구와 기울이는 술자리도 미뤄진 상태지만 미혼일 때보다 지금이 더욱 행복하다고. “싱글일 때 자유로웠던 것도 좋았지만 이젠 언제나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 있다는 게 안심돼요. 전 같으면 혼자 속으로 삭이거나 친구에게 하소연했을 어려운 일도 남편과 같이 나누니 든든해요. 결혼 전에 충분히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에 결혼에 대한 제 두려움을 남편이 잘 이해해줘요. 물론 싸울 때도 있고 속상할 때도 있지만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라 가사 분담이나 시간 쓰는 일도 서로 타협해서 맞춰가고 있죠. 시댁 식구들에게 적응하는 것도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이제는 요령이 생겼어요. 아무튼 자유는 조금 줄었지만 결혼 전보다 모든 면에서 좀 더 안정되고 편안해진 느낌이에요.”
Expert Says 결혼은 행복 지수를 높여준다
달라진 가치관과 성 평등 의식의 발전으로 요즘 결혼하는 커플들은 과거에 비해 평등한 관계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일과 가사, 육아를 모두 맡아서 해내는 슈퍼우먼이 불평등하고 유행 지난 개념으로 취급받는 반면, 직장 생활은 물론 가사를 합리적으로 분담하고 육아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슈퍼 대디가 각광받고 있는 것도 결혼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를 보여준다. 시카고 대학의 2007년 연구 결과, 여성은 결혼으로 새롭게 맺어지는 가족들과의 관계를 통해 여성으로서의 조정 능력을 더욱 잘 발휘하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남녀 모두 태어나는 자녀들과의 관계를 통해 문제 해결 능력과 배려심을 배우게 되고, 삶의 목표 의식이 더욱 뚜렷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원만한 결혼 생활은 정서적인 안정 또한 가져온다. 흔히 한 사람과의 섹스와 반복되는 일상생활은 권태로울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라는 것. 시카고 대학의 레만 교수는 배우자와의 안정적인 관계와 대화는 그 어떤 우울증 치료제보다도 효과적이라고 한다. 같은 연구 결과에서도 자신에 대한 만족감, 정서적 안정감, 책임감, 인격적인 성숙이 결혼 후에 더욱 상승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결혼 생활은 금전적으로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행복경제학>의 창시자인 데이비드 블랜치플라워 교수와 앤드루 J. 오스왈드 교수는 원만한 결혼 생활은 돈으로 환산하면 연 1억2천만원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한다. 와우~!
물론 결혼한다고 누구나, 무조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인 안정도, 정서적인 만족감과 건강도 부부가 서로 노력할 때 이룰 수 있다. 하지만 결혼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과 오해를 갖고 있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사랑하는 사람과의 원만한 결혼을 통해 얻는 이점들이 행복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니까.